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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응원하던 그녀, 이제는 나의 아내… 사랑은 식었지만, 여전히 소중한 사람

by 탓픽 2025. 4. 17.

 

그녀를 처음 본 건
주말 저녁, 붉은 함성으로 가득한 야구장이었다.
한껏 치솟은 응원의 열기 속에서도
그녀는 유독 눈에 띄었다.
빨간 유니폼, 펄쩍펄쩍 뛰며 깃발을 흔들던 모습.
활짝 웃는 얼굴, 맑은 눈빛.
그날 경기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바로 그녀였다.

나는 그날, 야구보다
그녀에게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겨우 용기 내어 말을 걸었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줬다.
"여기 자리 좋아요. 우리 팀 이기겠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그녀와의 모든 장면을 상상하게 됐다.
야구장 데이트,
밤길 손잡고 걷기,
눈 내리는 날의 고백,
그리고 언젠가… 결혼.

그 상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서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고,
결국 부부가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영화 같았다.
응원가처럼 활기차고,
치맥처럼 짜릿했다.
소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웃으며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아이의 울음소리,
주말마다 쌓인 집안일,
야구장 대신 마트,
데이트 대신 장보기.
사랑은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었고,
그 익숙함은
때로는 권태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야구 중계를 봐도 예전처럼 소리 지르지 않았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휴대폰을 확인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나도, 그녀도 가끔 그런 말을 주고받았지만
딱히 답을 찾진 않았다.
사랑이 식었다고 느껴졌고,
서운함과 오해가 겹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다고 그녀를 놓고 싶진 않았다.

여전히 피곤한 퇴근길,
현관 앞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은 그녀였고,
감기 기운 있는 날
말없이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그녀였다.

서로 설레지 않아도,
말 없이 밥만 먹는 날이 많아도,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
그게 아내,
그리고 나의 그녀였다.

야구장 응원석에서 보았던
그 환한 그녀는 이제 없지만,
대신 삶이라는 긴 경기장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끝까지 함께 싸워주는 든든한 동료가 되었다.

사랑은 식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함께한 추억이,
견뎌낸 시간들이,
그리고 지금 이 일상이
모두 그녀와 함께라서 가능했다.

언젠가 다시 야구장을 함께 찾게 된다면
나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고
속삭일 것이다.
"이 경기, 끝까지 함께하자.
우린 아직, 질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