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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바라만 보던 그녀, 다시 만났을 때 사랑이 되었다

by 탓픽 2025. 4. 18.

 

대학교 2학년 봄.
나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곤 했다.
그곳엔 한 여자가 있었다.

흰 셔츠에 짙은 색 가디건,
조용히 노트를 펴고 강의를 듣던 그녀.
웃는 모습도 드물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던 그 옆모습은
왜 그리도 아름답던지.
나는 늘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멀리서.
인사 한 마디, 말 한 줄 건네지 못한 채
그렇게 몇 학기를 조용히 흘려보냈다.

졸업을 앞두고 한 번쯤 말을 걸까 망설였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른 채
그녀는 내 청춘의 흐릿한 페이지로
그저 **‘기억의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몇 년.
사회생활은 바쁘고 치열했다.
직장이라는 세계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대학생 시절의 설렘 같은 건
책상 서랍 속 옛 사진처럼 잊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서 발령을 받고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거기 있었다.
바로 그때 그 여자.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며
어디선가 본 듯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대학교 ○○과였어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후 우린 자주 점심을 같이 했고,
퇴근 후엔 카페에 들러 오래된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나만 몰래 바라본 게 아니었다.
그녀도 내 존재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말 한 마디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에선 끝내 맺지 못했던 인연을
지금에서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연애는 서툴렀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우리 사이를 단단히 감싸줬다.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지금 나누며 우리는 매일 조금씩 가까워졌다.

결국,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그 기억 속 잃어버렸던 한 페이지는
이제 따뜻한 현실이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만약 말을 걸었더라면
우리는 더 일찍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지금은 사랑할 준비가 된 시간이라는 걸.

그녀는 이제 내 옆에 있다.
더 이상 멀리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책상을 마주하고,
같은 미래를 그리는 사람이다.

그녀와 나 사이엔
청춘의 아련함도,
지금의 따뜻함도 함께 머문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때로는, 시간이 돌아 다시 데려다주는 인연도
세상엔 존재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