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햇빛은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새로 차를 보러 간 그 전시장 앞에서
나는 한 사람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의 이름은 영미.
차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단정한 재킷 아래 흐르는 따뜻한 미소의 여자였다.
영미는 자동차 판매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차를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명 하나에도 정성이 묻어났고,
고객의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이던 사람이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시트의 감촉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어느새 인생의 굴곡과 취향까지 나누게 되었다.
“운전은 사람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급하게 가는 사람은 마음이 늘 바쁘고,
부드럽게 도는 사람은 여유가 있죠.”
그녀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제 운전은 어때 보이세요?”
영미는 살짝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약간 조심스럽고, 조금은 따뜻해요.
그게… 좋은 방향 같아요.”
그녀의 말투엔 늘 여백이 있었다.
그 여백 안에 나는 자꾸 마음을 담게 되었고,
그녀와 나 사이엔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가까워지는 공기가 있었다.
차를 계약하고 돌아서던 날,
나는 괜히 아쉬워 몇 걸음 뒤에 멈췄다.
그녀도 같은 순간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마치 이 만남이
단지 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서로 알고 있다는 듯이.
그 후로 우리는
종종 커피를 마셨다.
주행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좋아하는 영화로 대화가 넘어갔고,
서로의 어릴 적 추억까지도 나누게 되었다.
영미는 책을 좋아했고,
비 오는 날 드라이브를 즐겼다.
나는 그런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우리에겐 현실도 있었다.
바쁜 일정,
서로 다른 생활 리듬,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마음속 깊이 간직한
조심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는 늘 나를 배려해주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작은 따뜻함이라도
하나 더 건네고 싶었다.
함께한 날들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참 깊었다.
이제는 그녀를 자주 만나지 않는다.
서로의 길을 존중한 채
조용히 마음을 정리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차를 탈 때마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천천히 회전할 때면
영미의 말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도는 사람이 여유가 있는 거예요.”
그녀는 여전히,
내 삶의 가장 조용한 코너에 머물러 있다.
그 미소,
그 말투,
그리고 그 따뜻했던 눈빛.
영미는 내게 자동차보다 더 중요한,
‘기억’이라는 것을 남겨주었다.
그 기억은
언제나 천천히, 부드럽게
내 마음을 돌아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이끈다.
영미,
당신은 내 인생의
가장 따뜻한 드라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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