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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일본에서 만난 나의 사랑, 이제는 두 딸의 엄마. 다른 사람의…

by 탓픽 2025. 4. 11.

일본은 낯선 듯 익숙한 풍경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혼자 떠난 여행,
무작정 걷고 또 걷다 멈춘 골목의 작은 카페.
거기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흰 셔츠에 베이지 앞치마를 입은 여자,
조용한 인사와 함께 내게 물을 내어주던 손길.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눈동자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깊고 담백했다.
그녀의 이름은 하루카.

하루카는
말보다 눈빛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짧은 일본어와 어설픈 영어로 나눈 대화는
오히려 그 모든 불완전함 덕분에
더 따뜻하고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내게
근처 신사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산책길을 알려주었고,
아침마다 마시는 따뜻한 녹차 한 잔에
어떤 마음이 담겨야 하는지도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나는 매일 그 카페를 찾았다.
그녀는 늘 같은 자리, 같은 미소로 나를 맞았다.
우리는 말없이도 함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건네는 말 한마디, 손끝의 움직임,
눈웃음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날,
작은 종이에 적힌 편지를 내게 건넸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이 닿는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어요.
하지만… 저에겐 지켜야 할 일상이 있어요.”

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단호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걸어가는 삶의 방향,
그 안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몇 해가 지나
우연히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작은 도시의 조용한 집에서
두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아이들과 함께 찍힌 사진 속 그녀는
여전히 따뜻했고,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아내이고,
두 딸의 엄마다.
그 이름을 부를 자격조차
이제는 나에게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본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
녹차향이 부드럽게 코끝을 스칠 때마다
그녀가 떠오른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한때 내 마음이 머물렀던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 되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엔
언제나 봄의 오후처럼,
햇살 가득한 카페 한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하루카,
네가 있던 그 나라,
그 계절,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