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네프 다리에서 마주친 그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그녀

 

파리의 밤, 그리고 운명 같은 만남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지 사흘째, 나는 세느강을 따라 거닐다가 자연스럽게 퐁네프 다리에 발길을 멈췄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네프는 밤이 되면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석양이 강물 위에 부서지고, 에펠탑이 멀리서 반짝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다리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한 여성이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그녀는 짙은 갈색 머리를 무심하게 묶고 있었고,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두른 채 창백한 얼굴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다리에 서 있던 사람처럼, 이곳 풍경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짧지만 깊었던 대화

그녀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당신도 여길 좋아하나요?"

맑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나는 약간 놀라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이곳의 분위기가 참 좋아요. 파리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여기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곳이거든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쓸쓸해 보였지만, 눈빛 속에는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

"혹시 여행 중이세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국에서 왔어요. 며칠 동안 파리를 둘러보고 있어요."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국, 멋진 곳이겠네요. 저는 클레르라고 해요."

"저는 지훈이에요."

이름을 나누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다른 도시에서 지내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어쩌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것 같아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나는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파리에 대해, 예술과 음악, 그리고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파리의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밤이 깊어가며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는 퐁네프 다리에서 내려와 세느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변의 조명이 그녀의 옅은 미소를 더욱 아름답게 비췄다.

나는 문득 용기를 내어 물었다.

"클레르, 내일 저녁에도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나는 깊게 묻지 않았다. 그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예고된 이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순간

다음 날 저녁, 우리는 몽마르트르에서 다시 만났다. 사크레쾨르 성당 앞에서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함께 와인을 마셨다.

그녀는 어제보다 더 밝아 보였고,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일 아침에 런던으로 떠나요. 아마도 한동안 파리에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 말했어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그녀의 눈빛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은 넓고도 좁으니까,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녀는 말을 흐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늘의 기억은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그날 밤,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 걸었다. 그리고 결국 퐁네프 다리에서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기억

그녀가 떠난 후에도 나는 한동안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연락처도, SNS도 주고받지 않았기에 그녀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그녀와 함께했던 그 짧고도 강렬했던 순간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퐁네프 다리를 지날 때마다 그녀를 떠올릴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대화, 밤하늘 아래 그녀의 미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았던 따뜻한 손길까지.

어쩌면 사랑은 꼭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강렬한 순간으로 남아 영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