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ODAY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그날들

by 탓픽 2025. 3. 22.

 


 

가끔은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 처음부터 잘못된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그 사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내 스스로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기억은 내 마음 한구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와 나는 오랜 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서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었던 그, 그리고 늘 밝고 명랑한 나. 우리는 누구보다 편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자신의 연인을 소개했다.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녀가 웃을 때 느껴지는 온기, 말투에서 배어 나오는 다정함,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분위기까지. 처음 본 순간, 나는 그녀가 왜 친구의 연인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친구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셋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말 한마디, 우연히 마주친 눈빛, 그리고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손길까지.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절망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사랑. 친구를 배신할 수도 없고,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랑. 나는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녀가 내 앞에서 환하게 웃을 때마다 나는 더 많이 웃었고, 그녀가 친구와 다투고 속상해할 때면 친구 편을 들며 애써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마음이란 그렇게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힘들어할 때마다 위로해주고 싶었고, 친구와 다툰 후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 감정이 들킬까 봐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어느 날, 그녀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다.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자리를 떠났고,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조용한 카페 안에선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그녀가 말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한마디에 너무 많은 감정이 스며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도 그래."

그게 전부였다.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더 이상 키우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는 그날, 비가 오는 거리를 걸어갔고,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점점 그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친구와의 관계도 예전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색해졌고, 나는 나 혼자 그 감정을 삭여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와 친구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안도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는 내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걸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멀어졌고, 친구도 내 곁을 떠나갔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서 그 사랑을 묻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흐려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는다. 그 시절, 나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했고,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동시에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마도 그 사랑은 그저 내 가슴속에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야 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사랑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외로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