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ODAY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게 죄인가요

by 탓픽 2025. 5. 8.
300x250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게 된 것은,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누군가의 마음에 균열을 내려 했던 것도, 소중한 우정을 흔들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친구가 곁에 있을 때조차, 그녀가 웃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마치 무작정 문을 두드리는 바람처럼, 예고 없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그녀는 나의 친구의 연인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알아도 멈추지 않았다. 죄책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목을 조였고, 동시에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감정을 부정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녀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섬세함이 있었다. 친구는 자주 그녀의 이야기를 내게 했고, 나는 그때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 감정을 감추었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 느끼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그 감정을 애써 작은 구멍에 넣어 눌러 담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틈을 만들어 기어이 새어 나오게 되어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을 때였다. 그건 단순한 친근함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마다 생각했다.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더 큰 혼란을 낳았다. 상상은 곧 상처가 되었고, 나는 매번 그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친구 앞에서 더 밝게 웃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홀로 감정을 씹었다. 그건 마치 입 안 가득 쓴 약을 머금고 있는 기분이었다.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 친구의 사이도 예전 같지 않게 보였다. 말수가 줄고,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친구는 내게 털어놓기도 했다. “요즘 걔랑 잘 안 돼.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 말에 나는 위로해야 했고, 동시에 안도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벽이 있었지만, 그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웃음, 기척이 자꾸 나를 흔들었다. 우정을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과, 이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다는 욕망 사이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도, 친구에게 진실을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모든 걸 삼켜주길 바랐다. 그러나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와 헤어졌고, 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제 그녀는 친구의 연인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친구의 이름과 연결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을 얻었지만, 동시에 그 명분은 너무 늦은 것이기도 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너, 나한테 한 번이라도 마음 있었던 적 있어?”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넌 좋은 친구였어. 그것뿐이야.” 그 말은 내게 칼보다 더 날카로웠고, 동시에 해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사랑했던 건 어쩌면 그녀 그 자체가 아니라, 금기된 감정이 주는 짜릿함과, 내 안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친구의 연인을 사랑한 것은 죄일까. 도덕의 잣대로 본다면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감정이 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죄가 될 수 있지만, 감정 자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장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내가 저지른 죄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책임을 지지 못했던 것이었다. 감정을 감춘 채 우정도, 사랑도 흐릿하게 만든 것. 그것이 진짜 죄였다.

지금은 그 누구도 내 곁에 없다. 친구는 멀어졌고, 그녀도 내 삶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마음을 숨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진심은 때로 침묵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다시는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든 마주한 이상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죄는, 사랑을 가장한 이기심과, 그 감정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함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 앞에서 도망쳤던 한 사람일 뿐이었다.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