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에 선 오늘,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다. 그 따스함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서늘함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 속에서 그의 웃음이 여전히 선명하다. 이혼했지만, 아직도 그리운 나의 남편.
열 해 전 우리는 서로를 생의 동반자로 맞이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믿었다. 햇살 가득한 봄날,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맞잡은 손에는 영원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 약속이 언젠가 흐릿해질 것이라고는, 그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 몇 년은 행복의 물결 위에 떠 있는 듯했다. 아침이면 그가 내려준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저녁이면 서로의 하루를 나누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쌓아갔다. 그의 웃음소리는 우리 집을 가득 채우는 햇살 같았고, 그의 손길은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봄바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이에도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된 갈등이 점차 깊은 균열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했지만, 그 다름이 때로는 넘기 힘든 산처럼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너무 다른 것 같아."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던 그날 밤, 나는 우리의 결혼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을 뿐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며 나 역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우리의 이별은 미움이나 분노가 아닌,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결과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 '배우자'가 아닌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
이별 후 처음 맞이한 봄은 유독 쓸쓸했다.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 안을 정리하며 나는 매일 밤 울었다. 그가 좋아하던 음악, 그가 앉곤 했던 소파, 그가 읽다 만 책들... 모든 것이 그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의 부재는 내 일상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혼자만의 일상을 구축해 나갔다. 새로운 취미를 찾고,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처음에는 그를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점차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더 깊은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가 떠오르곤 한다. 길을 걷다 그가 좋아하던 음식점을 지날 때, 그가 즐겨 듣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올 때, 그가 항상 감탄하던 석양을 바라볼 때... 그 순간마다 마음 한켠이 아릿해진다. 이것이 미련일까, 아니면 단순히 소중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일까.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고, 꽤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내 마음 속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성공이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성공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그 사랑은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멀리서 응원하는 사랑으로 변해 있었다.
이혼 후 5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고 있니? 네 소식 들었어. 정말 기쁘게 생각해." 의외로 그의 답장은 빨리 왔다. "나도 네 소식 궁금했어. 잘 지내고 있어?"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끔 우리는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주름이 더해졌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따뜻하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특별한 친구가 되어 있다.
가끔 '만약'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참았다면, 만약 우리가 조금 더 대화했다면,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려 했다면...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곧 허공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옳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를 다시 만날 때마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움, 아쉬움, 그리고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사랑. 하지만 동시에 나는 우리가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이별이 이렇게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본다. 그 시절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그는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 함께한 시간들은 내가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삶은 참 이상하다. 우리는 영원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깊은 배움을 주고받았다. 그는 나에게 도전의 가치를, 나는 그에게 안정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그 배움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사랑이란 꼭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를 떠나보낸 후에야 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자유이며, 집착이 아닌 존중이다.
이제 나는 그를 '내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내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변했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것이 미련인지, 애정인지, 혹은 단순한 추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또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계절은 끊임없이 변화하듯 우리의 인생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때로 그를 그리워하겠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에 우리가 노년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으며 옛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조용히 꿈꿔본다.
이혼했지만 그리운 나의 남편. 그는 내 과거이자, 현재의 일부이며, 어쩌면 미래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는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저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내 길을 걸어간다.
창문 너머 저녁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간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과거에 묶여 있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려 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와의 추억 속으로 살며시 걸어 들어가 잠시 머무르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오늘 밤에도 나는 창가에 앉아 별을 바라본다. 같은 하늘 아래, 어디선가 그도 이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이혼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때로는 그 길이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혼했지만 그리운 나의 남편. 그와의 추억은 내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 추억을 안고, 오늘도 내일도,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계절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그에 대한 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혹은 단순한 추억이든 말이다.
'TO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만되면 그리워 나의 그녀 (0) | 2025.05.03 |
---|---|
나의 첫사랑 교생선생님을 다시 만나 사귀게 된 사연 (0) | 2025.05.02 |
여름이 오면 생각나는 러시아에서온 그녀, 소냐 (0) | 2025.05.02 |
내가 바람피워서 헤어졌지만 내게는 그녀뿐이야 (0) | 2025.05.01 |
엇갈린 믿음의 잔해 위로 피어나는 애달픈 그리움 (0) | 2025.05.01 |
새벽의 별빛 아래 아련한 기억, 그리운 나의 미영아 (0) | 2025.04.30 |
하얀 유니폼의 천사, 병원에서 피어난 영롱한 추억 (0) | 2025.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