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봄날의 교실은 유난히 반짝였다. 햇살은 창문을 타고 들어와 우리의 책상을 환하게 비췄고, 운동장에서는 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떠돌았다. 그 속에서 나에게 유난히 특별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그 아이는 늘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까맣고 긴 머리가 바람결에 살랑거렸고, 말할 때면 눈웃음을 지으며 귀엽게 고개를 기울이곤 했다. 처음엔 단순히 친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같은 숙제를 두고 고민하고, 줄넘기를 하면서 서로 경쟁했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그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 아이를 더 자주 보고 싶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괜히 그 아이 주변을 맴돌고, 급식을 먹을 때면 줄을 맞추는 와중에도 그 아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찾곤 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도, 문득 교실 창문을 바라보며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그것이 어릴 적 내가 가졌던 첫사랑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급에서 장기자랑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와 그 아이는 우연히 같은 팀이 되었다. 우리는 다 함께 노래를 부르기로 했고, 연습을 하던 중 나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고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노래를 부르면 교실에 있던 모든 소리가 멈춘 듯했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더욱더 그 아이가 좋아졌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 교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랐고, 가끔 숙제를 빌려주면서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다.
시간은 흘러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우리는 중학교가 달랐고, 자연스럽게 연락도 뜸해졌다. 졸업식 날, 나는 마지막으로 그 아이에게 작은 편지를 썼다. 사실 그 안에는 ‘좋아했다’는 말을 담으려 했지만,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중학교 가서도 잘 지내. 가끔 기억해줘."라고 짧게 적었다. 그 아이는 내 편지를 받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잊힐 법도 한데, 가끔씩 문득 그 아이가 생각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이루어졌던 것이라 믿는다. 비록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도, 그 시절 나의 마음은 분명히 진심이었고, 그 아이를 바라보며 설레던 순간들은 변함없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까.
어쩌면 그 아이도 가끔 나를 떠올릴까. 먼 훗날, 길을 걷다 우연히라도 마주친다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첫사랑은 처음이라 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가슴 한편에서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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