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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미는 밤의 무게, 흩어지는 너의 잔상

by 탓픽 2025. 4. 29.





창밖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으로 덧칠해져 있다. 도시의 불빛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희미하게 빛나지만, 지금 이 방 안의 어둠은 그 어떤 빛으로도 쉬이 걷어낼 수 없을 것 같다. "이별에 힘든 이 밤"이라는 짧은 문장이 가슴 깊숙이 박혀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는다. 마치 단단한 닻처럼,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 밤에 굳건히 붙잡아 매고 있는 듯하다.

이별. 두 글자 속에 담긴 무게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때로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득 그 실체가 드러날 때면 온 세상을 짓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깊은 사랑을 나눈 뒤의 이별은, 익숙했던 모든 풍경을 낯설게 만들고, 당연했던 모든 순간들을 아련한 추억으로 변모시킨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길에 갑자기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린아이의 막막함과 닮아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듯하다. 시계의 초침 소리는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미세한 떨림마저 증폭시켜 귀를 맴돌고, 벽에 걸린 그림자의 길이는 야속하게만 늘어선다.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는 이토록 느린 흐름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고요 속에서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또렷한 속도로 나를 이 밤의 끝으로 밀어 넣고 있다.

문득,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밤들이 떠오른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포근한 밤, 별빛 아래 속삭였던 낭만적인 밤, 때로는 사소한 일로 다투고 토라졌던 서운한 밤들까지. 그 모든 밤의 조각들이 깨진 유리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판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없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이 되어 뼈저리게 와닿는다.

우리의 사랑은 마치 섬세하게 쌓아 올린 모래성과 같았다. 작은 파도에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안에서 행복했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만들어갔던 시간들은 모래알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결국,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우리의 아름다운 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흔적조차 없이 쓸어가 버렸다.

이별의 이유는 때로는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얽힘 속에서 흐릿하게 남겨진다. 서로의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을 수도 있고, 감정의 온도가 식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더 이상 함께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큰 아픔을 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이미 흩어져 버린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려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시절의 따뜻했던 온기를 그리워하며, 놓아주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혼자 남겨진 방 안에는 그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함께 찍었던 사진 속 환한 미소, 그가 선물했던 작은 인형, 그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날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문득 스치는 그의 향기는 잊었던 슬픔을 다시금 끌어올리고, 텅 빈 공간은 그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이 밤의 힘겨움은 단순히 그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익숙했던 일상의 균열, 앞으로 혼자 감당해야 할 낯선 시간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더욱 깊은 슬픔으로 밀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밤만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서도 새벽은 반드시 찾아오고, 차가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이별의 아픔 또한 언젠가는 희미해질 것이다. 지금은 당장의 슬픔에 갇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시간을 믿고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어쩌면 이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백을 만들어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익숙했던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아 나서는 시간. 상처가 아물고 나면, 우리는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밤의 눈물은 슬픔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흘러나오는 감정들을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껏 울고, 아파하고, 그리워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밤의 무게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의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직은 깊은 밤이지만, 희미하게나마 새벽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일까. 이별에 힘든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그의 빈자리를 끌어안고, 텅 빈 시간을 채워나가며, 다시 혼자 걷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오듯이, 이별의 아픔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 밤을 돌아보며, 그때의 슬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쯤이면, 이 밤의 힘겨움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나를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리라.

지금은 그저, 이 스미는 밤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흩어지는 너의 잔상을 붙잡고, 조용히 이별을 애도하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나의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