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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과의 짧은 사랑

by 탓픽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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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종종, 그 여름날을 떠올리곤 한다.
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셨던, 그 시절.
오후 두 시의 정적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들면, 나는 문득 그 애를 떠올린다.

그 애는 사촌동생이었다.
하지만 그저 가족이라고 하기엔,
그 애는 내게 너무 낯설고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잠시 지냈다.
부모님 사정으로 몇 달간 우리 집에 머무르게 된 그 애는
서울에서 내려온 도시 아이 특유의 말투와 차가운 눈빛을 갖고 있었다.

나는 조금 경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애는 금세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침 식탁에 나란히 앉아 시리얼을 먹고,
낮엔 같이 만화책을 보고,
밤에는 옥상에 올라가 별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휘말렸다.

사촌이라 부르기에 어색할 만큼 가까워졌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무언가 말하지 못할 떨림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처음 그 애의 손이 내 손등에 스쳤을 때,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건 아주 작은 접촉이었지만,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넌 왜, 항상 조용해?"
그 애가 물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 애의 말투는 건조했지만, 그 안에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촌이란 말이 무겁게 가슴을 눌렀지만,
감정은 명확했다.
좋아했고, 보고 싶었고, 더 함께 있고 싶었다.

어느 날, 그 애가 내 방에 들어왔다.
"서울 가기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랑 있으면… 왠지 좀 편해."

그 짧은 말이 전부였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좋아한다는 표현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이 단순한 친밀함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며칠 뒤, 그 애는 떠났다.
작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나는 손을 흔들지도 못했다.
그저 멀어져 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름 햇살이 반짝이던 그 골목에서,
내 마음속에 무언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 후로 우리는 특별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명절에 어쩌다 마주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처럼 인사를 주고받았다.
눈빛도 조심스럽고, 말투도 어색했다.

사촌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혼자 있을 때면 그 여름을 떠올린다.

이름 모를 감정이 피어나던 시간,
처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가슴이 저렸던 순간들,
그리고 말하지 못한,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사랑.

그건 아주 짧았지만,
결코 작지 않았다.

그 애와 나 사이에 흐르던 침묵,
그것이 곧 우리의 대화였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억된 사랑이었다.

누군가는 금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촌 사이의 감정은 순수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저,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기울어졌던
한 사람의 조용한 성장기였다고.
그 여름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가르쳐 준 계절이었다.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어쩌면 영영 교차하지 않을 평행선이 되었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 여름의 나와, 그 애가 살아 있다.

햇살이 따뜻한 오후엔
가끔 그 골목을 걷는 기분으로
그 시절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도,
그리움도,
그저 그렇게 묻어둔 채.

그 여름의 짧은 사랑은,
시간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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